1978년 개봉작 디어 헌터(The Deer Hunter)는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하기보다는 전쟁이라는 것이 인간성과 공동체에 어떤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를 섬세하게 조명한 작품입니다. 다음에서는 디어 헌터의 결말 해석과 주요 명장면, 그리고 미국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이 영화가 주는 메시지를 해석해보겠습니다.

디어 헌터의 결말 해석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닉(크리스토퍼 워컨)이 죽은 이후, 마이클(로버트 드 니로)을 비롯한 생존자들이 작은 바에 모여 아침 식사를 함께 하는 장면으로 전개됩니다. 그들은 매우 무겁고 침묵에 잠긴 분위기 속에서 서로의 상처를 공유합니다. 그런데 누군가 ‘God Bless America’를 조용히 부르기 시작하고, 모든 사람들이 그 노래를 따라 부르게 됩니다.
이러한 결말은 단순히 애국심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서, 전쟁의 비극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이 조국에 대해 갖게 된 복합적인 감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는 결코 치유될 수 없으며, 닉처럼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의 몫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또한 ‘God Bless America’는 영화 전반을 관통하는 아이러니의 정점이라 평가되는데요. 전쟁이라는 국가 간 폭력에 의해 삶이 파괴된 사람들이 그 국가를 찬미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점에서, 미국 사회가 안고 있는 모순과 갈등을 여실히 드러냅니다. 신앙과 공동체, 그리고 조국에 대한 사랑이 모두 파괴된 현실 속에서 간신히 남은 연대의 끈이 이 장면을 통해 표현되는 것입니다.

디어 헌터 러시안 룰렛 명장면
디어 헌터에서 가장 강렬하고 인상적인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러시안 룰렛 장면일 것입니다. 이 장면은 단순히 긴장을 유발시키기 위한 설정이 아니라, 전쟁의 광기와 인간성 상실을 상징적으로 응축한 장면으로 해석됩니다.
포로로 잡힌 마이클과 닉, 스티븐은 베트남군에 의해 강제로 러시안 룰렛을 하도록 강요 받습니다. 총을 머리에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는 장면은 육체적 고통을 넘어 인간이 인간에게 가하는 심리적 파괴를 극한까지 보여줍니다. 생존 자체가 무의미해진 절망의 상황인 이 장면은 관객에게 전쟁이 인간을 어떻게 파괴하는지를 뼈저리게 실감하게 합니다.
특히 닉은 이 룰렛에 중독된 듯한 상태로 전쟁이 끝난 후에도 사이공의 도박장에서 계속 게임을 이어가게 되며, 결국 목숨을 잃게 됩니다. 이것은 전쟁이 남긴 트라우마가 단순히 시간의 흐름으로 치유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강력한 대목입니다. 즉, 러시안 룰렛은 단순한 도박이 아닌 인간이 가진 생명의 무게와 운명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중요한 도구로 작용합니다.

미국의 정체성 상징 요소
디어 헌터는 단순 반전 영화가 아닙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을 다층적으로 탐구하는 드라마입니다. 영화 초반부에는 펜실베이니아의 러스트 벨트 노동자들이 사슴 사냥을 즐기고, 러시아 정교회의 전통 결혼식을 치르며, 총기 문화와 공동체 의식 속에서 살아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이들에게 사냥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떠나서, 삶과 죽음, 질서와 통제를 상징합니다. 마이클은 사슴을 한 발에 명중시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며, 그것은 자연의 순환과 질서에 대한 존중을 보입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후, 그는 더 이상 사슴을 쏘지 못하게 됩니다. 이유는 자연 앞에서의 인간성과, 전쟁이 만든 비인간성 사이의 갈등과 충돌 때문입니다.
미국인에게 있어 총기는 자유와 권리의 상징으로 여겨지지만, 영화에서는 파괴의 도구로 의미가 부각됩니다. 또한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성조기와 국가(God Bless America), 결혼식, 종교 예식 등은 미국 정체성의 대표적인 요소들이지만, 이들이 전쟁의 현실 앞에서 얼마나 무력해지는지를 영화는 냉철하게 보여줍니다.
전쟁 이후의 공동체는 이미 이전의 공동체가 아닌 것입니다. 닉은 결국 죽게 되고, 스티븐은 불구가 되었으며, 남겨진 사람들 역시 침묵 속에 묻혀 살아가게 됩니다. 미국의 정체성이란 과연 무엇일까? 또 그것은 여전히 존엄한가? 이 영화는 이와 같은 질문을 조용하지만 날카롭게 던지고 있습니다.
디어 헌터는 전쟁 영화의 외형을 띠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전쟁이 인간의 삶과 공동체, 그리고 국가의 정체성에 어떤 흔적을 남기는가에 대한 철학적 탐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다. 결말 장면의 침묵 속 ‘God Bless America’와 러시안 룰렛이라는 압도적인 명장면, 그리고 영화 전반에 스며든 미국적 상징 요소들은 지금까지도 관객에게 깊은 질문을 던집니다.